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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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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칼날 세운 임금체불 단속, 법원의 ‘고의’ 판단은 왜 다른가

[최상률의 일家양得]175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9-09 07:16 수정 2026-09-0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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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추석 연휴를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91일부터 23일까지를 임금체불 집중 청산 지도기간으로 정하고, 체불 신고가 반복된 사업장과 건설업 등 고위험 사업장 약 8,000곳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명절 밑천을 손에 쥐지 못한 근로자들의 절박함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나는 사용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엇갈린다. “돈이 없어서 못 준 건데 왜 형사처벌까지 받아야 하느냐는 억울함과 줘야 할 돈을 안 줬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둘 다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임금체불의 형사책임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한 법리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정교함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속 시즌을 넘기려는 기업일수록, 정작 필요한 방어권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경우가 많다.

 

1. 임금체불죄는 결과책임이 아니라 고의범이다

먼저 짚어야 할 대전제가 있다. 민사상 임금 지급 의무가 인정된다는 사실과, 근로기준법 제109·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44조가 규정하는 형사상 임금체불죄가 성립한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다. 임금체불죄는 고의범이다. 사용자가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한 데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이 원칙이 실무에서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노동감독관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더라도 고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으면 보완수사가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돈을 안 준 것은 사실이니 유죄라는 단순한 도식이 통하지 않는 구조를 형사법 체계 스스로가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는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조항이 아니라, 형사처벌이라는 국가형벌권의 무게에 걸맞은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2. 고의 판단의 핵심은 다툴 만한 근거가 있었는가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무엇을 근거로 고의를 판단하는가. 대법원은 사용자가 임금 등의 지급 의무를 다툴 만한 근거가 있었다면 지급하지 않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으므로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71539 판결). 판단 시점도 중요하다. 사전이나 사후가 아니라 법정 지급기한이 도래해 실제로 체불이 발생한 그 시점, 사용자에게 고의가 있었는지를 원칙으로 삼는다.

 

여기서 실무자들이 자주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나는 지급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사용자의 주관적 항변만으로 고의가 자동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법원은 사용자가 지급을 거절한 이유, 지급 의무의 근거, 회사의 조직과 규모 및 사업 목적, 지급 의무의 존부와 범위를 둘러싼 당시의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결국 사용자의 확신이 아니라, 체불 당시 객관적으로 다툴 만한 합리적 근거가 실제로 존재했는지가 관건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사용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법정에서는 당신의 진심이 아니라 당신이 남긴 기록이 말을 한다.”이다.

 

3. 민사에서 졌다고 형사에서도 지는 것은 아니다

HR 실무자가 가장 헷갈려 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회사와 근로자가 임금 지급 여부를 다투다가, 최종적으로 민사재판에서 회사의 지급 의무가 인정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회사는 형사책임도 당연히 지게 될까.

대법원의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사후적으로 민사상 지급책임이 인정됐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체불 당시의 고의까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의 태도다(대법원 2018. 1. 25. 선고 20151681 판결). 민사판결은 미지급 임금의 존재나 액수를 판단하는 데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급할 돈이 있었다는 사실과 체불 당시 지급 의무를 알면서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필자는 이 판례의 태도가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본다. 만약 민사 패소가 곧 형사 유죄로 직결된다면, 사용자는 임금 관련 분쟁에서 정당한 항변조차 포기하게 될 것이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는 사안까지 지레 굴복시키는 방향으로 형사법이 작동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 논리가 상습적 체불 사업주의 방패막이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동시에 강조해야 한다. 관건은 결국 실제로 다툴 만했는가를 얼마나 엄격하게 심사하느냐다.

 

4. 판례가 그어놓은 경계선, ‘액수다툼과 의무다툼은 다르다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면 법원이 그어놓은 경계선이 꽤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용자가 근로자와 정산 과정에서 일정 금액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면, 이후 전체 금액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더라도 적어도 다툼이 없었던 부분을 지급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고의가 인정된 사례가 있다.

 

반면 법원이 고의를 부정한 사례들은 성격이 다르다. 노동위원회 절차 등을 통해 임금 지급 의무의 존재 자체를 다퉈온 경우, 상여금 및 퇴직금 차액을 둘러싸고 노사 간 실질적 다툼이 있었던 경우, 임금 산정 방식이나 실제 근로일수에 관한 근본적인 다툼이 있었고 사용자가 상당 금액을 이미 지급한 경우다.

두 유형을 나란히 놓고 보면 원리가 명확해진다. “얼마를 줘야 하는가를 다투는 것과 애초에 지급할 의무가 있는가를 다투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지급 의무 자체는 인정하면서 액수만 다투는 경우라면 고의는 비교적 쉽게 인정된다. 반대로 지급 의무 자체를 합리적 근거를 갖고 실질적으로 다퉈왔다면, 사후에 민사상 의무가 인정되더라도 체불 당시 고의까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법을 몰랐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지급 의무가 명백한데도 사용자가 관련 법률을 알지 못해 지급하지 않았다면, 단순한 법률의 부지만으로 형사책임이 부정되지 않는다. 무지는 방어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관리 소홀의 증거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을 사용자들은 종종 간과한다.

 

5. 고의가 인정돼도 남는 질문 책임의 문제

고의가 인정된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로 직행하는 것도 아니다. 형법의 오랜 원리대로, 당시 사용자에게 적법하게 임금을 지급할 것을 기대할 수 있었는지를 별도로 살펴야 한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가피한 사정으로 지급하지 못했다면,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어 책임이 조각될 수 있다고 본다(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83826 판결, 대법원 2001. 2. 23. 선고 2001204 판결).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회사에 돈이 없어서 못 줬다는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원은 사용자가 적극적인 변제계획을 제시했는지, 근로자 측과 성실하게 협의했는지, 체불임금 지급을 위해 회사 자산을 양도하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진다. 경영난은 시작점일 뿐 종착점이 아니다. 자금난 속에서도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가피하게 체불이 지속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책임이 부정될 수 있다(대법원 1994. 3. 25. 선고 932903 판결, 대법원 2009. 8. 20. 선고 20094067 판결 등).

 

필자는 이 지점에서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지킬 기록은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힘들어서 못 줬다는 하소연은 법정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변제계획서를 작성했는가, 그것을 근로자에게 통지했는가, 협의 기록이 남아 있는가, 자산 매각이나 대출 등 자구 노력의 증빙이 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경영난은 정상참작 사유조차 되기 어렵다.

 

6. HR이 지금 챙겨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번 추석 특별점검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명백한 지급 의무가 있고 지급 능력도 충분한데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지급하지 않았다면, 민사상 책임은 물론 형사책임까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현장에서 급증하는 분쟁은 이런 단순한 유형이 아니다. 근로자성 인정 여부, 특정 금품의 임금 해당성, 각종 수당의 지급요건과 산정방식 등 지급 의무 자체나 그 범위를 둘러싼 복잡한 다툼이 훨씬 많다. 이런 사안에서는 사후적으로 지급 의무가 인정됐다는 이유만으로 체불 당시의 고의까지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다.

 

따라서 HR 실무에서 지급 여부에 다툼이 예상된다면, 단순히 지급한다/지급하지 않는다는 결론만 남겨서는 부족하다. 왜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어떤 법적·사실적 근거로 그렇게 판단했는지, 노사 간 어떤 협의가 오갔는지를 당시 시점에 문서로 남겨야 한다. 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판단의 과정을 기록하라는 것이다. 사내 변호사 검토 의견, 노무사 자문 회신, 유사 판례 검토 자료, 노사협의 회의록, 임금 산정 근거 자료 등 이런 것들이 훗날 고의가 없었다는 항변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증거가 된다. 사건이 터진 뒤에 급조한 논리는 법원을 설득하지 못한다.

 

특히 지금처럼 점검과 단속이 강화되는 시기라면 접근 방식을 두 갈래로 나눠야 한다. 첫째, 단순 미지급 임금이 있는지를 전수 점검하고 즉시 청산해야 한다. 명백한 채무를 방치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방어되지 않는다. 둘째, 현재 지급 여부를 다투고 있는 임금·수당이 있다면, 그 판단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안 줘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내부 확신과 법원도 그렇게 볼 만한 근거가 있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맺는 말

임금체불 형사책임을 가르는 것은 결국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결과 하나가 아니다. 법원은 체불 당시 사용자가 왜 지급하지 않았는지, 그 판단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는지까지 끝까지 들여다본다. 결과가 아니라 근거를 남겨두어야 한다. 추석을 앞두고 강화된 단속은 상습적·악의적 체불 사업주에게는 응당한 경고이지만, 정당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선의의 사용자에게까지 무차별적인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경계를 가르는 것은 결국 사용자가 그 순간 얼마나 성실하게, 그리고 얼마나 근거를 갖고 판단하고 행동했는가에 달려 있다. 명절 밑천을 기다리는 근로자의 절박함과, 억울하게 형사처벌의 문턱에 서는 선의의 사용자의 항변이 동시에 존중받는 법 집행이 되기를 바란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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