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노사 모두 반발한 '노동쟁의 대상 지침' 필요한 건 배제가 아니라 새로운 협의 트랙이다고 본다.
노사 양쪽에서 동시에 얻어맞는 지침이라니,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3일 내놓은 '경영성과급 등 노동쟁의 대상 시행지침'이 그렇다. 한쪽은 "노사 자치를 침해하는 위헌적 지침이니 폐기하라"고 외치고, 다른 쪽은 "이 정도 지침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아예 법을 뜯어고치라"고 맞선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결론은 하나다. 이 지침은 틀렸다는 것이다. 갈등을 정리하겠다며 꺼낸 카드가 갈등의 새 진원지가 됐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문제는 이 지침 한 장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지침이 나온 타이밍이다. 그 타이밍을 보면 노동계가 왜 "월권"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쓰는지, 경영계조차 왜 "이걸론 부족하다"며 등을 돌리는지 선명해진다.
1. 법은 문을 열었는데, 지침은 문을 닫았다
국회는 지난해 8월 24일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핵심은 노동쟁의의 정의 조항(제2조 제5호) 확장이다. 종전에는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만 노동쟁의였지만, 개정법은 여기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못박아 추가했다. 정리해고와 사업 통폐합처럼 그동안 판례가 교섭 밖으로 밀어냈던 영역까지, 국회가 정면으로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 법은 공포 후 6개월, 내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시행을 반년도 안 남긴 시점에 나온 이 지침은, 국회가 열어젖힌 그 문을 다시 걸어 잠그는 내용이다. 영업이익·매출액·당기순이익 연동 성과급은 물론, AI 도입과 사업 매각·인수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를 아예 의무적 교섭대상도 쟁의행위 대상도 아니라고 단칼에 잘랐다.
법은 "사업경영상 결정도 노동쟁의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는데, 행정지침이 "다만 대부분은 예외"라며 그 선언을 무력화한 셈이 되었다. 시행령도 아닌 지침 한 장으로 법률의 취지를 되감아버린 것이다.
한국노총이 "법률의 위임 없이 헌법상 노동3권과 개정법의 적용 범위를 정부가 축소할 수 없다"고 쏘아붙인 것은 과민 반응이 아니다. 정확한 지적이다. 국회가 지난한 정치적 타협 끝에 넓혀놓은 법의 지평을, 행정부가 지침이라는 편법으로 슬그머니 되돌린다면, 그것은 삼권분립에 대한 도전이다. 노동부는 "법 시행 전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항변하겠지만, 변명이 궁색하다. 법의 취지를 구체화하는 지침과 법의 취지를 뒤집는 지침은 다르다. 이번 지침은 후자다.
2. 노동계 입장 "형식으로 실질을 가르지 마라"
노동계의 분노에는 뼈가 있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이 짚었듯, 이 지침은 기본급·연봉 연동 성과급은 교섭대상으로 인정하면서 영업이익·매출액 연동 성과급은 잘라낸다. 노동자 입장에서 이 둘은 다른 요구가 아니다. "회사가 잘 벌었으니 나눠달라"는 요청 하나를 재무제표 어느 항목에서 끌어왔느냐로 교섭 여부를 가른다면, 그건 요구의 실질이 아니라 형식으로 헌법상 권리를 재단하는 것이다. 재무지표 연동을 원천 봉쇄하면 노사는 매년 지급률을 원점에서 다시 싸워야 한다. 지침이 갈등을 막겠다면서 오히려 갈등을 매년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민주노총 우문숙 정책국장의 일갈도 뼈아프다.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은 현실에서 미리 투명하게 공고되지 않는다. 알짜 자산 매각, 사모펀드 발 구조조정은 늘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다. 그런데 지침은 "근로조건 변동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때"만 교섭대상이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기준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사용자는 구조조정 계획을 감출수록 유리해진다. 정보를 늦게 줄수록, 애매하게 줄수록 교섭 의무를 피해갈 수 있다는 역설적 유인을 지침이 스스로 만들어준 꼴이다.
3. 경영계 입장 "지침으론 안 된다, 법으로 못박아라"
경영계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방향은 반대지만 날은 똑같이 서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침이 "어떤 경영성과급이 임금성 있는 근로조건에 해당하는지" 구체적 기준을 내놓지 못했다고 직격한다. 대법원은 사기업 경영성과급의 임금성을 근로의 대가성, 지급 의무의 존재, 계속적·정기적 지급 여부를 종합해 사안별로 가려왔다. 이런 판례상 요건을 지침이 담지 않은 채 '연동 방식'만으로 뚝 잘라 나눴으니, 현장에서는 "우리 회사 성과급이 어느 쪽이냐"를 놓고 결국 소송으로 다시 싸울 판이다.
AI 등 신기술 도입에 따른 배치전환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열어둔 대목은 경영계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찔렀다. 신기술 도입은 필연적으로 업무방식 변화를 부른다. 이를 폭넓게 쟁의 대상으로 인정하면, 산업 전환기의 대규모 투자 결정 자체가 파업 리스크에 발목 잡힐 수 있다. 경총이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대상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침만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한 계산에서 나온 요구다.
4. 두 진영이 놓치고 있는 것
역설적이게도, 노동계와 경영계는 한 지점에서 완전히 일치한다. "이 지침은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진단이다. 다만 처방이 갈릴 뿐이다. 노동계는 '폐기 후 원점'을, 경영계는 '입법을 통한 배제 확정'을 요구한다. 두 처방 모두 병을 잘못 짚었다. 진짜 쟁점은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이 쟁의 대상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AI 도입이 쟁의 대상이냐 아니냐"도 아니다. 쟁의 대상 여부를 다투기 전에, 그 정보를 노사가 나누고 논의할 절차 자체가 우리 법 체계에 없다는 것, 그것이 진짜 공백이다.
경영성과급이든 신기술 도입이든, 노동자가 정말 원하는 것은 대개 결정에 대한 거부권이 아니다.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정보와 발언권이다. 그런데 현행 노동조합법은 그 중간지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교섭 대상이냐 아니냐"는 흑백 논리로만 판단하게 설계돼 있다. 이번 지침이 노사 모두를 격분시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교섭대상에서 빠지는 순간 노동자는 아무 절차적 권리도 갖지 못하고, 교섭대상에 들어가는 순간 사용자는 파업 리스크를 통째로 떠안는다. 이 극단적 이분 구조 자체가 문제의 뿌리다.
5. 실질적 대안은 '쟁의냐 아니냐'가 아니라 '협의냐 방치냐'로 물어야 한다
첫째, 영업이익 등 기업이익 연동형 성과급은 노동쟁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원칙 자체는 유지하되, 그 자리를 법정 '성과배분협의회'로 채워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은 매년 영업이익·배당·투자계획 등 재무 정보를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대표에게 공개하고 협의할 의무를 지되, 협의가 결렬돼도 쟁의권은 발생하지 않고 노동위원회의 조정 권고로 마무리한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실질적 대화 창구'와 경영계가 요구하는 '쟁의 리스크 차단', 이 둘을 동시에 잡는 유일한 길이다.
둘째, AI 도입과 구조조정 등 사업경영상 결정에는 '사전 통보·협의 의무제'를 명문화해야 한다. 독일 사업장 평의회법이 정보제공권과 협의권을 결정권과 분리해 규정하듯, 결정이 확정되기 전 단계부터 근로자 대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하도록 의무화하면, 노동계가 두려워하는 '기습적 구조조정'을 막으면서도 경영계가 두려워하는 '결정권 자체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지금처럼 "근로조건 변동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때"만 교섭 의무가 발생하도록 방치하면, 정보를 숨길수록 유리해지는 역유인만 키울 뿐이다.
셋째, 이 절차를 관장할 상설 기구로 노동위원회 안에 '성과급·산업전환 조정위원회'(가칭)를 세워야 한다. 개별 사건마다 행정지도와 부당노동행위 판단을 뒤섞어 처리하는 지금 구조로는 지침의 자의적 적용 논란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전담 기구가 사례를 쌓고 기준을 공개해야, 노사 모두가 걱정하는 예측가능성 문제가 비로소 풀린다.
넷째, 이 모든 내용은 지침이 아니라 법률로 담아야 한다. 경총의 "법 개정" 요구, 그 자체는 옳다. 다만 방향이 틀렸다. 경영계가 원하는 대로 '일방적 배제'로만 흘러가서는 안 된다. 노란봉투법이 사업 경영상 결정을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국회의 정치적 합의를 이룬 지 채 1년이 안 됐다. 그 합의를 행정지침으로 슬그머니 되돌릴 게 아니라, 국회가 정기국회에서 이 협의 트랙을 법 개정안에 정면으로 담아 다시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맺는 말
AI와 산업전환이 부르는 노사 갈등은 앞으로 더 자주, 더 세게 터질 것이다. 그때마다 정부가 지침 한 장으로 교통정리를 하려 든다면, 이번처럼 노사 양쪽에서 얻어맞는 결과가 되풀이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누구 편을 들어주는 지침이 아니다. 노사가 정보를 나누고 마주 앉아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의 문을 여는 입법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