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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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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인간만이 살아남는다, 노동은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최상률의 일家양得]174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9-06 05:44 수정 2026-09-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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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들어가는 말

95일 오늘 밤 1115, YTN 특별기획 더 프롬프트5화가 방송됐다. 세계적 지성 6인과의 대담으로 구성된 이 6부작 시리즈에서 다섯 번째 주인공은 하버드대학교 문학·연극학 석좌교수이자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의 저자 마틴 푸크너였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AI 시대, 인간의 이야기는 살아남을까."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가 꺼내 든 소재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공자, 부처를 인공지능 챗봇으로 되살려 학생들과 대화하게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방송을 노동법을 다루는 사람의 눈으로 지켜보면, 화면 너머로 다른 질문이 겹쳐 보인다. 고대의 교육기관은 무엇으로 사람을 길러냈는가. 그리고 그 답이 지금 우리의 일자리, 우리의 노동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이다. AI시대, 고대 교실에서 되짚는 일의 미래, 이 칼럼은 그 두 질문을 잇는 시도다.

1. 고대 교육기관이 남긴 것 대화, 질문,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스승

푸크너 교수가 지적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있다. 공자와 부처, 소크라테스는 정작 자기 손으로 글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신 대화의 방식을 발전시켰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받아 적으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텍스트가 탄생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와 부처, 소크라테스는 직접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각자 대화의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챗봇을 이용하면 마치 쥬라기 공원처럼, 이런 텍스트를 바탕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철학자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이 이 방송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다.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 곡부의 서당, 인도의 승가(僧伽) 등 인류 최초의 교육기관들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창고가 아니었다. 그것은 묻고 답하며, 반박당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었던 공간이다. 하버드대 소식지와의 인터뷰에서 푸크너 교수는 이 점을 더 명확히 설명한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AI와 상호작용한다. 고대의 사상가들은 문자 사회에 살았지만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 있는 대화, 특정한 방식의 질문과 답을 고집했다. 그들이 죽은 뒤 제자들이 그 말을 받아 적으며 철학적 대화록이라는 형식을 발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 교육기관의 본질은 '정답의 축적'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의 훈련'이었다. 플라톤이 스승의 대화를 기록해 철학이라는 학문을 발명했듯, 오늘날 우리는 그 대화의 텍스트를 학습한 챗봇을 통해 다시 소크라테스와 마주 앉는다. 푸크너 교수는 이를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쓰는 "또 하나의 지능적 존재"와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데 뛰어나기 때문에, 이 능력은 이제 과학·기술 분야만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에게도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남긴 첫 번째 메시지는 이렇다. AI시대에 가장 위험한 태도는 AI'정답 자판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강력한 인간의 자산은 고대 교육기관이 갈고 다진 '질문하는 능력'이다. 이는 향후 논의할 노동의 문제와 직결된다.
 

2. AI시대,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푸크너 교수가 제시한 실천적 결론은 명료하다. "AI 시대에는 어떤 분야든 기본기를 갖추고, 그 분야에 특화된 AI를 잘 활용하는 법만 익히면, 스스로 생각하고 참여하면서도 굉장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진단은 이번 시리즈의 다른 대담자들과도 정확히 맞물린다.

3화에 출연한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 교수는 AI를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라 "작업 범위를 넓혀주는 협업 파트너"로 규정하며,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세로축)과 주변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로축)를 함께 갖춘 'T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2화에 출연한 뉴욕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정반대 방향에서 경고음을 냈다. 그는 어린 학생들에게 AI를 무분별하게 노출시키는 것은 "큰 실수"라며, 한국이 특히 이 실수를 서두르고 있다고 직언했다.

이 두 진단을 겹쳐 놓으면 하나의 원칙이 드러난다. AI는 기본기가 있는 사람의 역량을 폭발적으로 확장하지만, 기본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사고력을 대체해 오히려 텅 빈 인간을 만든다. 푸크너 교수가 소크라테스를 챗봇으로 되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학생이 챗봇에게 답을 구걸하는 대신, 챗봇과 '대화'하며 스스로 사유를 다지도록 설계했다. 이것이 AI시대 인간이 붙잡아야 할 첫 번째 생존 전략이다. , AI를 사유의 대체물이 아니라 사유의 촉매로 쓰는 습관, 그리고 그 습관을 뒷받침할 기본기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문화적으로 보면 이는 결국 '느린 사고'의 복원을 의미한다. 고대의 교육이 도제식 대화와 반복된 질문으로 시간을 들였던 것처럼, AI시대의 개인과 조직도 속도만을 좇기보다 질문하고 검증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것이 방송이 우리에게 제시한 방향이며, 동시에 노동 현장에 던지는 숙제다.
 

3. 그러나 방송이 말하지 않은 것, 노동시장의 균열

여기까지가 이 방송이 그려낸 그림이다. 그러나 노동 현장을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이 우아한 그림에는 빠진 조각이 있다. 방송은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 존재'로 남을지를 말했지만, 그 개인이 몸담은 일자리와 계약, 소득이 AI 도입 과정에서 어떻게 흔들리는지는 다루지 않았다. 4화에 출연한 스탠퍼드대 제리 카플란 교수가 다룬 주제 즉, AI가 실제로 일자리를 대체하는 방식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운다. AI는 기존 직업을 통째로 소멸시키기보다 직무를 재구성하며, 그 재구성의 충격은 저숙련·저협상력 노동자에게 먼저, 그리고 가장 무겁게 떨어진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그 충격을 받아내는 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이 확인된 사실이다. 고용노동부 추산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약 126만 명, 플랫폼종사자 약 80만 명, 프리랜서 약 66만 명 등 임금근로자가 아닌 노무제공자가 약 210만 명에 이른다. 이들 다수가 AI 기반 배차·매칭·평가 알고리즘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정부는 예술인(202012), 특고 12개 직종(20217), 플랫폼 2개 직종(20221) 순으로 고용보험 적용을 단계적으로 넓혀왔고, 최근에는 노무제공자의 범위를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전환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정부 역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확대 적용을 국정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10월 새로 고시된 플랫폼·특고 노동자의 기준보수가 월 133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제도가 확장되는 속도와 그 제도가 실제로 보장하는 삶의 수준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AI가 이 구조 위에 얹히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알고리즘이 업무를 배분·평가·해고까지 관여하는 상황에서 '누가 사용자인가'라는 질문, 즉 사용자성 판단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동시에 기업은 AI 도입을 이유로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거나 감축하면서도, 그 인력이 새로운 직무로 옮겨갈 수 있도록 재훈련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하이트 교수가 경고한 '한국의 서두름'은 교육 현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노동 현장에서도 우리는 준비 없이 속도만 내고 있는 것이다.
 

4. 노동전문가의 결론 제도와 문화, 두 축으로 대처하라

이 방송이 그려낸 인간상과 우리가 직면한 노동시장의 현실을 함께 놓고 보면, AI시대에 대한 대응은 두 축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제도의 축이다. 고용보험을 포괄주의로 전환하는 입법은 방향이 옳다. 다만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기준보수의 현실화, 알고리즘에 의한 업무 배분·평가·해고에 대한 설명 요구권과 이의제기권의 법제화, 그리고 AI로 인한 직무 재편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재직자 전환 훈련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산업안전·고용정책의 결합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새로운 노무 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대통령령을 뒤늦게 고치는 방식으로는, AI가 만들어내는 직무 변화의 속도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둘째, 문화의 축이다. 이것이 오늘 방송이 진짜로 제안한 지점이다. 고대 교육기관이 대화와 질문으로 사람을 길렀듯, AI시대의 일터도 '지시-수행'의 구조에서 '질문-검증-책임'의 구조로 옮겨가야 한다. 기업은 AI 도입을 단순한 인력 절감의 수단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선 몰릭 교수가 말한 '리더십, 실험실, 대중'의 결합 즉, 경영진이 먼저 AI를 직접 써보고, 안전하게 실험할 공간을 만들고, 구성원 모두가 좋은 AI 모델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채 도입되는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로만 기능한다. 반면 그 체계가 갖춰진 조직에서는 AI가 인간의 판단력과 전문성을 확장하는 협업 파트너가 된다.
 

노동법과 인사노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문화적 전환이 결국 법적·제도적 보호의 실효성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정교한 고용보험 제도를 설계해도, 일터에서 인간의 질문과 이의제기가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라면 그 제도는 서류 위의 권리로만 남는다. 반대로 조직이 구성원의 질문을 허용하고 AI의 판단을 검증하는 문화를 갖췄다면, 그 조직은 법이 미처 따라잡지 못한 공백까지도 스스로 메워낼 수 있다.
 

맺는 말

푸크너 교수가 소크라테스를 챗봇으로 되살린 것은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문자를 갖기 전부터 지식과 사람을 길러온 원리 즉, 대화, 질문,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련되는 판단력이 AI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명이었다. 고대의 교실에는 정답을 나눠주는 스승이 아니라, 끝없이 되묻는 스승이 있었다.

오늘의 노동 현장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 되묻는 관계다. 노동자는 AI에게 답을 구걸하지 않을 기본기를, 기업은 AI를 인력 절감의 도구가 아니라 협업의 파트너로 세울 문화를, 그리고 정부는 노무제공자 210만 명이 더 이상 사각지대에 남지 않도록 제도의 속도를 낼 책임을 각자 짊어져야 한다. AI 시대에 인간의 이야기가 살아남을지를 묻던 오늘 밤의 질문은, 결국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그 일을 지키는 제도가 대화적일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다시, 대화로 돌아가는 노동을 찾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듯, 답을 서두르기보다 먼저 올바른 질문을 붙잡는 것, 그것이 이 방송이 노동 전문가에게 남긴 진짜 과제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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