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8-26 22:21

  • 오피니언 > 칼럼/사설

이력서도, 면접도 AI가 보는 시대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최상률의 일家양得]171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8-26 16:55 수정 2026-08-26 19:34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들어가는 말

글로벌 채용시장이 AI에 넘어가는 동안, 국회와 기업은 방치했다

콘페리(Korn Ferry)가 인사·채용 리더 1,600여 명에게 물었더니 절반이 넘는 52%가 올해 안에 자율 AI 에이전트를 채용팀에 투입하겠다고 답했다. 세계1위의 컨설팅펌 딜로이트는 89개국 9,000여 명을 조사해 자율 AI가 후보자 파이프라인을 종단간으로 관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고, 가트너는 2026년 말까지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의 40%가 특정 업무형 AI 에이전트를 탑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잡코리아가 채용 담당자 1,286명을 조사한 결과 65% 이상이 AI 채용 에이전트를 이미 적용했거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고, SK하이닉스는 아예 자기소개서 항목을 없애고 AI 활용 문제해결 서식과 '반나절 면접'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숫자만 보면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재편이다. 그런데 이 재편의 한복판에서 아무도 답하지 않는 질문이 있다. AI가 이력서를 거르고 면접을 평가하다 오판했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노무사로서 단언하건대, 지금 한국의 채용 현장은 책임자가 실종된 무주공산이다. 기업은 효율을 이유로 판단을 기계에 떠넘겼고, 국회는 5년 넘게 이 사실을 알고도 손을 놓았고, 정부는 조문 하나 만들어놓고 현장에 방치했다. 세 주체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시점이다.

 

1. 채용의 자동화, 책임의 실종

AI 채용의 신뢰성 문제는 새삼스러운 논쟁이 아니다. 이미 결론이 난 문제를 국회와 기업이 못 본 척 끌어온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9~2020년 두 차례 채용에서 AI 역량검사를 면접 참고자료로 썼는데, 213명 가운데 유일하게 최고 등급인 S를 받은 지원자가 최종 탈락했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인천공항공사의 AI면접 결과는 가장 우수한 상위 10%S등급에서 오히려 최종합격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최하위 D등급에서도 상당수가 합격했다. AI의 판단이 채용 결과와 체계적으로 어긋난다는 사실은 5년도 더 전에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것은 예외적 오류가 아니라 구조적 결함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규율할 법은 여전히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0232월 구인자가 AI 기술을 채용에 활용할 경우 평가방식과 알고리즘 작동방법, 기술 점검결과를 구직자에게 미리 고지하도록 하자는 내용으로 발의됐다. 2024년에도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이 추가로 발의됐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3년 가까이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AI가 채용 파이프라인 전체를 종단간으로 관리하는 시대가 왔다는 진단이 쏟아지는 지금까지도, 정작 구직자는 자신을 떨어뜨린 알고리즘이 무엇인지조차 고지받을 권리가 없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입법부가 3년째 방치한 직무유기다.

 

2. "사람이 최종 판단한다"는 말은 면피용 알리바이다

업계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이런 통계를 내놓는다. ICIMS와 앱티튜드 리서치가 미국 기업 400여 곳을 조사했더니, AI 추천과 채용 담당자의 판단이 충돌할 때 담당자의 판단이 우선하는 비율이 58%였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흔히 "결국 사람이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근거로 인용되지만, 이는 정직하지 못한 인용이다.

 

뒤집어 보면 이 조사는 나머지 42%, 다섯 중 둘의 경우 AI의 판단이 사람의 판단을 그대로 이겨버린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생계와 경력을 가르는 결정에서 이 정도 비율이 기계에 넘어간다면, 그것은 안전판이 아니라 이미 뚫린 둑이다. 업계는 이 숫자를 안심의 근거로 포장할 게 아니라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파렴치한 문제는 따로 있다. 업계 스스로 AI가 소싱, 다채널 아웃리치, 1차 스크리닝 같은 거래적 업무의 60~80%를 이미 흡수했다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사람인 채용 담당자가 "최종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도장을 찍는 시점에는 이미 AI가 걸러낸 후보군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 사례처럼 우수한 지원자가 애초에 서류 단계에서 잘려나갔다면, 그 지원자는 사람의 최종 판단을 받아볼 기회조차 구경하지 못한다. "사람이 최종 결정한다"는 말은 절차의 마지막 한 토막에 대한 진술일 뿐, 절차 전체의 공정성을 보증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머지 80%의 책임 회피를 가려주는 알리바이로 쓰이고 있다.

 

3. 해외는 규율에 들어갔다, 한국은 아직도 뒷짐 지고 있다

이 격차는 국제 비교를 해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뚜렷해진다. 유럽연합의 AI법은 부속서 III에서 채용용 이력서 자동 선별과 면접 평가, 승진·해고 결정을 담당하는 AI 시스템을 고위험 AI로 명시적으로 분류했다. 최근 시행 시점이 20268월에서 202712월로 유예된 것은 사실이지만, 채용에 쓰이는 AI는 사업자의 자율에만 맡길 수 없다는 원칙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 뉴욕시는 이미 2023년부터 지방법 144호를 통해 자동화된 채용 의사결정 도구를 쓰는 고용주에게 사용 사실의 사전 고지, 최근 1년 이내 독립적 편향성 감사, 감사 결과의 웹사이트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규제가 기술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도 근거가 될 조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24315일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의2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이뤄지는 결정이 정보주체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정보주체가 그 결정을 거부하거나 기준과 처리 과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조문만 보면 AI 채용 탈락 통보를 받은 구직자도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 권리가 채용 맥락에 맞춰 안내되거나 실제로 행사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법은 만들어놓고 아무도 집행하지 않는, 장식용 조문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 채용절차법 개정안까지 3년째 계류 상태이니, 한국의 구직자는 유럽이나 뉴욕의 구직자보다 훨씬 헐벗은 상태로 AI 앞에 세워져 있는 셈이다. 이것을 방치라고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4. SK하이닉스식 개편은 공정이 아니라 격차의 재포장이다

SK하이닉스의 개편안은 언뜻 시대에 맞는 합리적 조치처럼 포장돼 있다. 자기소개서라는, 대필과 첨삭 시장을 키워온 형식적 관문을 없애고 실제 업무 능력을 보는 과제형 평가와 심층 인터뷰로 옮겨가겠다는 취지야 그럴듯하다. 그러나 겉포장을 걷어내고 보면 이 개편은 공정성 강화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표준 절차로 승인하는 조치에 가깝다.

 

지원자가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서술하도록 요구하는 신규 서식은, 결국 AI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를 당락의 기준으로 못박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AI 활용 역량은 이미 균질하지 않다. 유료 구독 여부, 프롬프트 작성을 가르쳐줄 사교육이나 선배·멘토의 존재, 평소 AI 도구를 업무나 학업에 통합해 쓸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계층에 따라 노골적으로 갈린다. 핸드셰이크 조사에서 정규직 신입 공고의 AI 역량 요구 비중이 1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사실은, 채용시장이 이 새로운 격차를 빠르게 정식 평가 기준으로 못박고 있다는 경고다. "AI를 초안 작성이 아니라 편집 도구로 써서 사람의 목소리를 남기라"는 업계의 조언도 한가한 소리다. 그 조언을 실행할 시간과 도구 접근성을 이미 가진 사람에게나 통하는 말일 뿐, 자원이 없는 청년에게는 또 하나의 넘을 수 없는 문턱을 세워줄 뿐이다.

 

자기소개서 폐지와 반나절 면접 도입을 청년 개인의 'AI 역량 부족' 탓으로 돌리는 담론은 명백한 책임 전가이며,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채용 절차를 설계하고 그 안에 AI 평가 기준을 끼워 넣는 주체는 기업이다. 새로운 평가 기준이 기존의 자원 격차를 그대로 실어 나르는 통로가 되지 않도록 설계하고 검증할 책임은 전적으로 그 기준을 만든 기업과, 이를 아무런 감독 없이 방치한 정책 당국에 있다. 이 책임을 청년 개인에게 떠넘기는 순간, 우리는 구조적 불평등을 자기계발 실패로 둔갑시키는 낡은 각본을 또 한 번 반복하는 것이다.

 

5. 노무사가 던지는 여섯 가지 요구

기술의 도입 속도를 늦추자는 순진한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책임의 강제 부과다. 국회와 기업과 정부가 스스로 하지 않겠다면, 법으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

 

첫째,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라. 3년째 서랍에 넣어둔 것 자체가 직무유기다. AI를 채용 절차에 활용할 경우 그 사실과 평가방식, 알고리즘 작동방법을 구직자에게 사전 고지하도록 하는 조항을 지체 없이 입법해야 한다.

 

둘째,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의2의 설명요구권과 거부권을 채용 맥락에 특화한 표준 절차로 즉시 구체화하라. 탈락 통보에 이의제기 방법과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 기업에는 실효성 있는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

 

셋째, 뉴욕시 지방법 144호를 그대로 가져와도 좋다.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쓰는 채용 AI에 대한 정기적인 편향성 감사와 결과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넷째, 고용노동부는 언제까지 관망만 할 것인가. AI 채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이를 근로감독 항목에 연계해, 위반 시 시정명령과 과태료로 이어지는 실질적 집행력을 지금 당장 갖춰야 한다.

 

다섯째, 노동위원회나 별도의 상담·구제 창구를 통해 AI 채용으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끼는 구직자가 이의를 제기하고 설명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실제로 열어야 한다.

 

여섯째, AI 활용 역량이 계층화된 새로운 스펙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취업준비생을 위한 공공 차원의 무료 AI 활용 교육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 요구 가운데 어느 것도 유예할 이유가 없다. AI가 사람의 생계와 경력을 가르는 결정을 대신하는 이상, 그 결정에는 설명과 이의제기, 감사와 제재라는 최소한의 책임 구조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이를 미루는 쪽은 예외 없이 그 피해를 구직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맺는 말

이력서도 면접도 AI가 보는 시대는 이미 도착했다. 콘페리와 딜로이트, 가트너의 조사, 잡코리아의 설문, SK하이닉스의 개편안까지, 인용된 모든 통계와 사례는 이 변화가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을 가리킨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인천공항공사 사례가 5년 전에 이미 증명했듯, AI의 판단은 틀릴 수 있고 실제로 틀려 왔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그 오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절차가 아직도 제대로 서 있지 않다. 이것은 우연한 공백이 아니라 국회의 방치, 기업의 무책임, 정부의 태만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AI가 채용을 재편하는 속도는 이미 입법과 제도를 추월한 지 오래다. 더 늦기 전에 이 공백을 메우지 않는다면, 다음번에 탈락 통보를 받고도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될 수 있다. 책임을 묻는 일을 미루는 순간, 그 대가는 가장 힘없는 구직자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빠른 실시간 뉴스, 태백시민·정선군민과 함께 만드는 언론
태백정선인터넷뉴스는 한국지역인터넷언론협회 회원사입니다.

 

ⓒ 태백정선인터넷뉴스 (tji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광고문의/취재요청 tbnews21@naver.com)

태백정선인터넷뉴스 (tbnews21@naver.com)

  • 등록된 관련기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