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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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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지 않는 대학, 대체되지 않는 노동

[최상률의 일家양得]169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8-24 15:06 수정 2026-08-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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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필자는 우연히 지난 2018, EBS 다큐프라임은 <취업난과 AI의 역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낯선 풍경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EBS 다큐프라임이 던진 여덟 해 전의 질문, 지금 한국이 답해야 한다.

스탠퍼드 공학관에서는 교수 없는 강의실, 800명이 몰리는 프로그래밍 수업, 교재도 학비도 없는 학교. EBS 다큐프라임 <취업난과 AI의 역습>이 비춘 풍경은 다소 낯설었다. 학생들이 종이로 자전거를 만들어 장애물 경주를 벌였고, 프랑스에는 교수도 교재도 학비도 없는 '3()'의 학교가 있어, 7만 명의 지원자 중 살아남은 이들이 한 달간 침낭을 덮고 코딩으로 밤을 지새웠다. 8년 전 화면 속 풍경은 먼 나라의 실험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그 질문이 되돌아왔다. 한국의 대학 강의실로, 청년 고용시장으로, 그리고 노무사인 필자의 상담실 한복판에 그대로 놓여 있다.

 

. 대학의 변신, 지식의 전수자에서 실패의 동반자로

다큐멘터리가 그린 대학들의 공통점은 하나, '가르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스탠퍼드 기계공학과는 1993년부터 학생들이 직접 부딪치며 원리를 깨닫게 했다. 교수는 경기장 밖에서 지켜볼 뿐, 종이 자전거가 부서지는 순간에도 학생들은 서로를 밀고 끌며 결승선에 닿았다. 존 헤네시 전 스탠퍼드 총장의 말은 명료하다.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는, 졸업 후 스스로 배우는 능력이 전공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버드에서는 그레고리 맨큐의 경제학,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간판 강의들이 뒤로 밀렸다. 대신 데이비드 말란 교수의 컴퓨터과학 입문 CS50이 최고 인기 강의에 올랐다. 수강생 78퍼센트가 비전공자다. 프랑스의 에콜42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교수도, 교재도, 정해진 답도 없다. 학생들은 서로에게 묻고 함께 코드를 짜며 답을 찾는다.

 

이 대학들의 메시지는 하나로 모인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시대, 살아남는 것은 전공 지식을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협업하고 실패하며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다. 대학은 4년 치 지식을 완결된 상품으로 포장해 건네는 곳이 아니다.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패를 반복하도록 돕는 코치, 그것이 대학의 새 역할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은 그대로다. 강의실은 여전히 정답을 전수하는 공간이고, 학생은 학점과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취업 동아리와 자격증 강의로 채워지는 대학 4, 다큐멘터리 속 대학들이 말한 '협업과 문제 해결'의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 5월 기준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자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은 45.7개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7년 이후 가장 길다. 대학이 변신을 미루는 사이 학생들은 졸업을 미루고, 그 끝에서 취업 재수의 늪으로 떨어지고 있다.

 

II.. 취업이라는 관문 늦어지는 졸업, 길어지는 공백

경고는 이미 그때 나왔다. 3년 안에 사무직과 제조업에서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컴퓨터·수학 직군에서 200만 개가 새로 생긴다는 전망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 전망은 한국에서 훨씬 냉정한 숫자로 돌아왔다. 올해 5월 청년층(15~29) 고용률 43.8퍼센트, 1년 전보다 2.4퍼센트포인트 하락해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이후 최저다. 경제활동참가율도 2004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졸업자 취업률은 68.9퍼센트로 낮아졌고, 첫 일자리를 구하는 데 평균 11.2개월이 걸린다. 졸업 후 1년 이상 미취업 상태인 청년은 미취업자의 48.6퍼센트,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3년 이상 장기 미취업 비율은 19.4퍼센트,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7월 청년 고용률은 44.2퍼센트. 27개월 연속 하락,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 침체다.

 

이 숫자는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27월부터 20267월까지 사라진 청년 일자리 211천 개 중 98.6퍼센트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나왔다. 다큐멘터리가 경고한 '지식 노동의 자동화'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다. 지금 한국 청년 고용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문제는 대학과 노동시장의 미스매치가 이 충격을 증폭시킨다는 데 있다. 기업은 경력직과 수시채용을 원하고 신입에게도 즉시 실무 능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대학은 스탠퍼드나 에콜42처럼 협업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여전히 강의식 지식 전달에 머물러 있다. 그 간극에서 청년들은 졸업을 미루고, 자격증을 쌓고, 몇 개월씩 취업을 준비하며 노동시장 진입 자체를 놓치고 있다.

 

III.. 노동의 미래 전망, 대체가 아니라 전환의 문제로

노동의 미래는 얼마나 더 위태로워질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답은 명확하다. 2030년이면 현재 일자리의 90퍼센트 이상에서, 업무의 90퍼센트 이상이 기술적으로 자동화될 수 있다. 다만 KDI는 이것이 곧 대량 실업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못박는다. 순고용이 늘지 줄지는 새로운 노동 수요가 얼마나 빠르게 창출되느냐에 달려 있다. 조직의 유연성을 높여 직무 이동을 촉진하고, 창업 생태계를 통해 신직무와 신직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관건은 '대체'가 아니다. '전환'을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해내느냐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노동시장 변화를 상시 감지하는 '한국형 AI 노출지수(K-AIOE)''카나리아 대시보드'2027년까지 구축하고, 2026년부터 2030년까지 100만 명 이상에게 AI 직업훈련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충격이 큰 지역은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로 지정해 고용안정과 재정 지원을 집중하고, 소득기반 고용보험 확대와 이·전직 지원도 함께 추진한다. 앞선 2026년 업무보고에서는 청년 연령 기준을 29세에서 34세로 올리고, 1분기 안에 'A I대응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속 대학들이 20여 년 전부터 실천해온 변화를, 한국은 이제야 제도로 뒤쫓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선임연구위원의 경고는 뼈아프다. AI가 만든 생산성 향상의 몫이 노동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으면, 파이는 커지는데 양극화는 더 깊어진다. 그는 AI 초과이윤을 국부펀드 형태로 환수하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사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도 다르지 않다. 산업전환의 충격은 결국 개별 근로계약과 실업급여, 전직 지원 제도의 문제로 떨어진다.

 

노동전문가로서 세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AI 직업훈련 100만 명 지원 사업은 대학의 정규 교육과정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 훈련이 대학 밖에서만 겉돌면, 다큐멘터리가 보여준 '대학의 변신' 없이는 효과가 반쪽에 그친다. 둘째, 해고에 준하는 인력 재편이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은근슬쩍 넘어가지 못하도록, 근로기준법과 실업급여·전직 지원 제도를 산업전환의 속도에 맞춰 다시 짜야 한다. 셋째, 소득 공백을 메우는 사회안전망과, 노사정이 AI 이익의 공유 방식을 상시 논의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함께 세워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에만 다큐멘터리가 그린 '변신'이 한국 청년의 일자리로 이어진다.

 

맺음말

8년 전 다큐멘터리의 질문은 단순했다. "대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 답을 미루는 사이, 한국의 청년들은 졸업을 미루고 취업을 미루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제 질문은 하나 더 늘어야 한다. "노동시장과 사회는 그 전환에서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가"이다. 대학의 변신, 취업 관문의 재편, 노동의 미래. 이는 순서대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풀어야 할 하나의 방정식이다. 협업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 배우는 태도. 다큐멘터리 속 청년들과 오늘의 냉정한 통계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변화를 늦추는 자에게 미래는 유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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