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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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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노동의 습격, 법은 아직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최상률의 일家양得]162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8-12 08:12 수정 2026-08-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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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I가 지운 얼굴, 노동법이 되찾아야 할 이름

이름이 없다. 근로계약서도 없다.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산재 보상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아이디 하나, 그리고 언제 끊길지 모르는 접속뿐이다. 프레시안이 보도한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읽으며 노무사로서 다시 확인한 것은 하나다.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기계이기 이전에, 노동을 잘게 부수어 '유령'으로 만드는 장치라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이렇게 잘라 말한다. "실질적으로 무수한 초단기 AI 보조 노동의 이름 없는 비정규직 유령노동 형태가 증식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은 은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이고 지극히 법률적인 사건이다.

 

2. '학습화'라는 이름의 착취

이 교수는 AI"데이터·전력·노동·자본이 결합된 거대 물리적 인프라"라 부른다. AI가 똑똑해지는 그 과정은, 누군가의 무보수 데이터와 누군가의 저임금 노동, 그리고 어느 지역의 자원 소모를 갈아 넣어야만 굴러가는 착취의 컨베이어벨트라는 것이다. 이 말을 확인하는 데는 학술 논문이 필요 없다. 지방노동위원회 결정문 한 장이면 충분하다.

 

20244,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데이터 라벨링 업체 크라우드웍스에서 일하던 노동자 최모 씨를 국내 최초로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했다. 출퇴근 시간이 사실상 고정돼 있었고, 근태를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했으며, 회사의 지시가 구체적이었다는, 대법원이 오랫동안 쌓아온 근로자성 판단 기준(대법원 2019.4.23. 선고 2016277538 판결)에 정확히 들어맞는 사례였다. 그런데 회사의 대응은 무엇이었나. 반성이 아니라 폐쇄였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자, 그 프로젝트 자체를 없애버렸다. 더 심각한 것은 그다음이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일한 동료 노동자 12명이 뒤이어 같은 취지의 구제신청을 냈지만, 노동위원회는 이를 서울지노위·중앙노동위원회에 걸쳐 세 차례나 모두 기각했고, 지금은 민사소송으로 넘어가 있다. 판정에 이겨도 일자리는 사라지고, 같은 사실관계라도 판단은 갈린다. 이것이 지금 유령노동의 생리다.

 

2026년 초 데이터 라벨링 업체 '에이모'에서 터진 사태는 이 생리를 더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에이모는 정규직·계약직 140명에게도 35억 원대 임금을 체불했지만,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 진짜 사각지대는 바로 옆에서 똑같이 회사의 지시를 받고 일한 프리랜서 라벨러 약 190명이다. 이들의 체불액은 약 4억 원, 대부분 정부·지자체의 일자리 연계 사업을 통해 이 일을 시작한 취약계층이었다. 이들이 낸 임금체불 진정은 "노동관계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에서 각하됐다. 국가가 문을 열어준 일자리에서, 국가가 만든 법이 바로 옆 정규직과 이들을 갈라놓았다. 10시간을 일해도 검수에서 반려되면 한 푼도 못 받는 구조, 건당 단가가 이유 없이 깎이는 '깜깜이 알고리즘' 이것이 '학습'이라는 인지적 은유 뒤에 숨은 물리적 착취의 맨얼굴이다.

 

3. 법은 왜 이들 앞에서 멈춰 서는가.

노무사로서 가장 참담한 지점이 여기다. 우리 노동법은 여전히 굴뚝과 컨베이어벨트의 시대, 20세기 공장제의 잣대로 21세기 유령노동을 재단한다. 출퇴근 시간과 감독의 흔적이 뚜렷해야만 근로자로 인정받는 지금의 틀에서는, 사업주가 계약서 몇 줄만 손질하면 얼마든지 노동자를 '독립사업자'로 둔갑시킬 수 있다. 실제로 크라우드웍스는 부당해고 판정 직후 계약서에서 출퇴근 조항을 지우고 업무 지시 방식을 바꿔 노동자성의 흔적 자체를 지웠다는 의혹을 받았다. 노동자 한 명이 힘겹게 승소해도 그 판정의 효력은 딱 그 사람에게만 미친다. 심지어 앞서 보았듯, 같은 사실관계로 뒤이어 싸운 동료 12명조차 세 번 내리 기각당했다. 같은 방식으로 착취당하는 수십만 라벨러는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한다. 이것은 방치가 아니라 설계된 무력화다.

 

4. 로봇과 함께 일한다는 것, 통제는 정밀해지고 위험은 전이된다.

이광석 교수가 짚은 또 하나의 진실 즉,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동시에, 함께 일하는 인간에 대한 통제를 "더 촘촘하고 비가시적인" 형태로 강화한다는 것은 쿠팡 물류센터에서 매일 증명된다. PDA는 시간당 생산량(UPH)을 실시간으로 찍어낸다. 2021년 공식 폐기됐다지만, 현장의 증언은 여전히 그것이 압박의 채찍으로 쓰인다고 말한다. 쿠팡 풀필먼트서비스에서 뇌심혈관 질환으로 진료받은 노동자는 2021497명에서 2024809명으로 늘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순찰 로봇개는 '안전'을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정작 노동자가 위험 개선을 건의하면 미뤄지고 감시 기능만 촘촘해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안전이라는 말이 감시의 알리바이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두고 이광석 교수가 던진 평가 즉, 능력치는 인간의 70% 수준, 나머지 30%는 현장에서 인간을 보며 채우겠다는 것은 산업안전 실무자에게는 경고음이다. 미완성 기계가 인간 곁에서 '실수하며 배우는' 그 과정 자체가 새로운 산재 원인이 된다. 그런데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은 '학습 중인 협동로봇'이 만드는 위험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로봇이 오작동해 사고가 났을 때 제조사와 도입 사업주, 현장 관리자 중 누가 얼마나 책임질 것인가. 법은 이 질문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5. 입법의 시간, 그러나 아직 미완성

물론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202512월 발의된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안'은 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서면 계약서 교부, 일방적 계약 변경·해지 금지, 보수의 직접·전액·정기 지급을 명문화하고 노동위원회에 분쟁조정위원회를 두는 내용을 담았다. 여당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 공정화법'도 함께 예고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가. 노동계는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2021년 플랫폼종사자보호법 논의 당시에도 노동계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곧바로 적용하면 될 것을, 별도법을 만들어 근로자가 아닌 제3의 신분으로 오분류 되게 한다"고 반대했다. 지금의 기본법 역시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할 것인지, 별도 기본법으로 갈 것인지조차 여당 내부에서 정리되지 않았다. 3의 신분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또 다른 사각지대의 창조일 뿐이다.

 

방향은 유럽연합의 2024년 플랫폼 워크지침(Platform Work Directive)에 있다. 이 지침의 핵심은 알고리즘 관리 투명성 의무와 함께, 노동자성을 부인하고 싶은 쪽 즉, 플랫폼이 스스로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법적 추정' 원칙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종속성을 일일이 캡처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하는 쪽이 증명하게 만드는 것. 이 무게중심의 이동이야말로 지금 한국 노동법에 결여된 것이다.

 

6. 노무사가 던지는 세 가지 요구

이광석 교수는 말한다.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총량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 전환의 비용을 치르고 누가 그 이득을 가져가느냐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담론이 아니라 결국 입법이다. 노동 현장의 실무자로서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알고리즘 관리의 투명성을 법적 의무로 못 박아라. 반려 기준, 배분 알고리즘, 단가 산정 방식이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춰진다면, 노동자는 자신이 정당하게 대우받는지조차 알 방법이 없다. EU 수준의 알고리즘 설명 의무와 이의제기권을 국내법에 즉시 도입해야 한다.

 

둘째, 근로자성 입증책임을 뒤집어라. 개별 소송으로만 권리가 인정되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승소 한 건이 나올 때마다 사업주는 계약서 문구만 바꿔 빠져나간다. 판정의 효력이 유사한 노무 제공 형태 전반에 미치도록 하는 집단적 구제 절차, 혹은 사업주에게 반증 책임을 지우는 입법 전환이 시급하다.

 

셋째, 협동 로봇·피지컬 AI가 투입되는 현장에 별도의 안전 기준을 세워라. '학습 중인 기계'와 인간이 뒤섞여 일하는 과정의 위험은 기존 기계·설비 안전 기준으로 포섭되지 않는다. 도입 초기 인간과 기계 협업 구간의 위험성 평가와 책임 소재를 사전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이광석 교수는 경고한다. "알고리즘을 중립적 도구로 포장하는 순간, 그 안에 새겨진 권력관계는 보이지 않게 된다." 노동법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 은폐된 권력관계를 다시 드러내는 데 있다. AI가 노동을 해방한다는 명제는 아직 증명된 적이 없다. 그러나 AI가 노동을 잘게 쪼개 유령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진정 각하 통보를 받은 프리랜서 라벨러 190명의 이름과 얼굴로 증명됐다. 이제는 법이 답할 차례다. 유령에게 이름을 돌려줄 것인가, 아니면 계속 침묵할 것인가이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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