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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자발적 이직 구직급여', 선의는 넘치고 설계는 부족하다

[최상률의 일家양得]161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8-10 09:04 수정 2026-08-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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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 발로 나간 사람에게 실업급여를 주는 나라는 없다. 그게 고용보험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그 상식에 스스로 도끼를 댔다. 20268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고용노동부가 꺼내든 카드는 이랬다. 35세 미만 청년이 일정 기간 근무한 뒤 이직 준비나 경력 전환을 이유로 제 발로 회사를 나가도, 생애 한 차례 구직급여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직 전 임금의 60%, 월 최대 100만 원. 연내 고용보험법 개정, 내년 예산 반영까지 일정표도 이미 나왔다.

 

말은 '청년 지원'이지만, 실은 수십 년을 버텨온 고용보험의 대원칙 하나를 정치적 결단 한 방으로 허무는 선언이다. 청년 고용 절벽 앞에서 뭐라도 해보겠다는 절박함은 이해한다. 그러나 절박함은 변명이 될 수 있어도 설계의 부실을 가려주는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선의로 포장될수록, 박수보다 메스가 먼저 가야 한다. 이 글에서는 노동전문가 입장에서 이번 정부안이 품고 있는 다섯 가지 균열을 가차 없이 짚는다.

 

1. '구직급여'라는 이름을 빌려 쓴 값

고용보험법 제37조가 그리는 구직급여의 얼굴은 명확하다. "근로의 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실직한 자." 이건 입법 기술의 우연이 아니라 사회보험 그 자체의 존재 이유다. 노사가 함께 낸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즉 비자발적 실업이라는 보험사고에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 스스로 선택한 결과까지 보험금으로 메워준다면, 그건 더 이상 보험이 아니라 복지다. 이름만 보험이고 내용은 부조인 셈이다.

 

정부는 기존 '구직급여'라는 틀 안에 이 예외를 욱여넣으면서, 지급 수준과 기간만 다르게 하겠다고 밝혔다.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알맹이의 근간만 파낸 셈이다. 차라리 청년 경력 전환 지원금이라는 새 이름을 달았어야 했다. 기존 제도의 이름값에 예외를 끼워 넣는 방식은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형평성 시비를 예약해두는 것과 같다. 고령자는, 경력단절 여성은, 특정 산업 종사자는 왜 안 되느냐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2. 청구서는 누가 받나,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들

가장 아픈 대목은 돈이다. 이 제도가 2027년부터 2029년까지 시행되면 총 34~358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이 돈이 고용보험기금, 그중에서도 실업급여 계정에서 나가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반복된 지급 확대로 이미 재정 건전성 경고음이 울려온 그 기금이다. 노동부 스스로도 "재정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현행 최대 270일과는 다르게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이렇다. "이 제도, 이대로는 감당이 안 된다."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이 비용을 왜 고용보험기금이 떠안아야 하는가. 서울시의회는 정확히 이 지점을 찔렀다. 청년의 경력 전환을 돕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해도, 그 재원을 노사가 리스크 분산을 위해 갹출한 고용보험기금에서 끌어다 쓰는 것이 타당한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노사 누구의 리스크와도 직접 관련 없는 정책에, 노사가 낸 보험료를 쓰겠다는 발상. 무임승차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일반회계든 국민취업지원제도든, 다른 지갑을 열었어야 할 사안이다.

 

3. '35세 미만, 생애 1'라는 선이 만드는 새로운 불공정

모든 정책은 선을 긋는다. 모든 선은 시비를 부른다. 하지만 이번 선은 유독 근거가 헐겁다.

연령부터 보자. 35세인가. 34세와 35, 36세 근로자의 '경력 전환 필요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나도 20대지만 이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소득·재산 기준은 아예 빠져 있다. 고용노동부의 설명자료를 봐도 도입 여부조차 확정된 게 없다. 별도 선별 기준이 없다면, 생계가 급한지 여유가 있는지는 상관없이 나이와 가입 이력만으로 수급이 갈린다. 대기업 다니며 느긋하게 이직을 준비하는 청년과, 당장 다음 달 월세가 걱정인 청년이 똑같은 조건으로 똑같은 급여를 받는다. 필요에 따라 나눈다는 사회보장의 기본 문법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리고 비자발적 이직자와의 형평성. 제 발로 나간 청년이 구직급여를 받는 동안, 해고나 권고사직으로 생계가 무너진 30대 후반, 40대는 기존 제도 안에 그대로 방치된다. "일하기 싫어 그만둔 사람에게 왜 세금을 퍼주느냐"는 격앙된 여론을 그저 감정적 반발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건 형평성 문제의 정직한 반영이다.

 

4. "생애 1회니까 괜찮다"는 말의 빈틈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정보 비대칭 때문에 이직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했다""생애 1회 설계여서 도덕적 해이 우려는 과도하다"고 못 박았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생애 1'라는 제약이 반복 수급이라는 남용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는 반복 수급자에게서만 생기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 카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재직 중인 청년의 퇴사 시점과 방식을 비틀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에 나가면 이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계산이 생기면, 최소 근속기간 문턱을 넘기려는 전략적 이직 타이밍, 형식적 재직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근속기간과 이직 사유 같은 핵심 요건이 아직 노사·전문가 논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마당에, 설계도 나오기 전에 우려부터 "과도하다"고 잘라 말하는 건 성급함을 넘어 무책임에 가깝다. 도덕적 해이 논쟁은 요건이 구체화된 뒤에 검증할 문제이지, 발표 시점에 서둘러 봉합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지지율 하락과 맞물린 '청년 표심 정책'으로 읽는 온라인 여론이 확산되는 것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정책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세부 요건 없이 지급액과 대상, 시행 일정만 먼저 언론에 흘러나온 발표 방식 자체가 '설익은 정치'라는 인상을 키웠다. 신뢰는 그렇게 새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

 

5. 정해진 건 방향뿐, 정해지지 않은 건 전부다

지금 확인 가능한 건 딱 네 가지이다.

35세 미만 청년의 일정한 자발적 이직을 대상으로 검토와 생애 한 차례 지급, 연내 고용보험법 개정, 내년 예산안 반영, 그리고 이직 전 임금의 60%, 월 최대 100만 원 수준으로 '검토'하는 것뿐이다.

 

반면 최소 근속기간, 실제 지급액과 지급 기간, 구직활동 요건, 소득·재산 기준, 부정수급 방지 장치, 회사의 이직 사유 확인 절차, 제도의 실질을 결정할 요소는 전부 빈칸이다. 3분기 노사 협의, 4분기 법안 발의, 국회 통과 이후 전산망 구축과 하위법령 마련이라는 일정만 잡혀 있다.

 

설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숫자만 먼저 세상에 풀렸다. 국민 머릿속에 각인되는 건 '임금 60%, 100만 원'이라는 숫자와 '생애 1'라는 슬로건 뿐이다. 이후 협의 과정에서 근속 요건이 까다로워지거나 지급 수준이 낮아지면, 그 낙차만큼 실망과 불신이 쌓인다. 순서가 틀렸다. 숫자보다 원칙과 요건을 먼저 확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친 뒤에 액수를 공개하는 것이 정책의 정도다.

 

6. 그래도 HR은 준비해야 한다. 비판은 비판, 실무는 실무이다.

설계에 아무리 흠이 많아도,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 기업의 인사 실무는 바로 영향권에 들어간다. 비판적 검토와는 별개로, HR 담당자가 지금 챙겨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온보딩을 정교하게 다시 짜라. 퇴사 이후 소득 공백의 부담이 줄어들면, 직무가 안 맞는다고 느낀 청년은 지금보다 훨씬 쉽게 퇴사 버튼을 누른다. 채용 단계에서 직무와 근로조건을 부풀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리고, 입사 후 3~6개월은 촘촘한 멘토링과 면담으로 미스매치를 조기에 잡아내야 한다.

 

둘째, 오프보딩과 이직 사유 관리를 정교하게 다시 짜라. 제도가 시행되면 이직확인서 발급 요청과 퇴직 사유 관련 문의가 몰릴 것이다. '개인사정'이라는 뭉뚱그린 처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퇴직을 먼저 제안한 쪽이 누구인지, 실제 퇴직 사유가 무엇인지, 회사가 제시한 대안은 무엇이었는지를 퇴직 면담을 통해 확인하고 기록해야 한다. 근로자의 요청만으로 사실과 다르게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는 관행은 이제 절대 금물이다. '자발적 경력 전환 이직'이라는 새 신고 범주가 생기는 순간, 허위 신고로 인한 부정수급 연루 리스크도 그만큼 커진다. 사직서, 퇴직 면담 기록, 이메일·메신저 같은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사실 그대로 신고하는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셋째, '퇴사 방지'가 아니라 '인력 유지 전략'으로 접근하라. 청년의 이동성이 높아질 것에 대비해, 퇴사를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조직안에서 성장할 기회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공정한 평가·보상, 내부 직무 전환, 경력개발, 유연근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일수록 이번 변화의 충격을 덜 받는다. 다만 '경력 전환 목적의 퇴사' 여부를 회사가 최종 판정하는 구조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회사는 확인 가능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신고하는 데 집중하고, 수급 자격 판단은 고용센터의 몫으로 남겨 둬야 한다.

 

맺음말

청년 고용이 벼랑 끝이고, 정보 비대칭 속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청년들이 재도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은 옳다. 하지만 옳은 문제의식이 옳은 제도를 자동으로 낳지는 않는다. 좋은 뜻으로 포장한 나쁜 설계는, 결국 그 좋은 뜻마저 함께 무너뜨린다. 사회보험의 근간을 허무는 방식이 아니라 별도 재원과 별도 이름으로 설계하는 방안, 연령이 아니라 실질적 필요를 반영한 선별 기준, 재정 추계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명한 설명, 세부 요건을 먼저 확정한 뒤 숫자를 공개하는 순서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정부가 그 답을 볼 의지가 있느냐다.

 

이 제도는 아직 법이 아니다. 3분기 노사 협의와 4분기 법안 발의 사이, 판을 다시 짤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지금 침묵하면, 훗날 청구서는 재정 파탄과 형평성 소송, 그리고 무너진 신뢰로 돌아온다. 무비판적 환영도, 무조건적 반대도 답이 아니다. 청년의 도전은 응원하되, 보험의 원칙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 그 균형을 지금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요구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노동전문가와 HR 담당자 모두에게 주어진, 결코 미룰 수 없는 몫이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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