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8-15 12:21

  • 오피니언 > 칼럼/사설

AI시대, 채용시장이 다시 묻는 '사람의 자리'

[최상률의 일家양得]156 전 고용노동부태백지청장,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노무사

기사입력 2026-08-05 05:47 수정 2026-08-06 03:57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1. 격세지감(隔世之感), 채용시장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취업시장에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스스로를 낮춰야 했다. 이공계 중심의 채용 관행 속에서 인문계 졸업생은 만성적인 취업난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채용시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문화일보가 지난 3일 보도한 것처럼, 잡코리아(운영사 웍스피어) 조사 결과 올해 상반기 전체 채용공고 중 우대 전공을 지정하지 않은 '전공 무관' 공고가 93.6%에 달했고, 인문계열 우대 공고는 지난해 하반기 대비 13.4% 증가했다. 채용시장의 무게중심이 '전공'에서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문송합니다'에서 '인문 우대', 역량중심채용 확산이 던지는 과제에 대하여 노무사로서 최근 채용시장을 들여다보고 왜 지금 인간 고유의 역량인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효성그룹이다. 효성은 1966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문·어문 계열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한 '2026년 인문대학생 신입사원 채용'을 지난달 진행했다.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는 글로벌 사업 구조 속에서 인문학적 소양과 어학 역량, 협업·리더십 경험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SK하이닉스 역시 기존 20~30분이던 면접을 반나절 과제 수행형 '하프데이 심층면접'으로 전면 개편해 AI 응용 능력, 인문학적 소양, 논리적 사고력을 종합 검증하기로 했다. 자기소개서 항목도 폐지하고 AI 활용 역량과 직무 전문성을 직접 서술하도록 서식을 바꿨다. 두 대기업 모두 '전공'이나 '스펙'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협업하며 판단하는 힘, 즉 인간 고유의 역량을 채용의 중심축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2. 왜 지금, '인간 고유의 역량'인가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AI가 정형화·반복적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지난 6월 진행한 '국민참여위원회' 토의에서도 이 점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의 영역과 역량'을 묻는 질문에 국민들은 공감·관계맺기·소통 등 사회정서 역량(35.3%)을 가장 많이 꼽았고, 가치·윤리 판단과 책임(21.3%), 비판적 사고와 질문 생성 능력(13.7%), 창의성과 상상력(11.2%)이 뒤를 이었다.

 

당시 발제를 맡은 이광호 국가교육위원회 국민참여위원장은 "교과 지식을 이해하고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훨씬 유능하다", 인간이 판단과 사유의 과정을 AI에 맡겨버리는 '사고의 외주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AI가 잘하는 영역(정보처리·정형 업무)과 인간이 잘하는 영역(공감·판단·책임·창의)이 분리되면서, 기업의 채용 기준도 '무엇을 전공했는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3. 노동전문가로서 짚어야 할 세 가지 과제

이 변화를 단순한 '인문계 훈풍'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 정책과 인사노무 실무를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최소 세 가지 과제가 함께 떠오른다.

 

첫째, 직무중심·역량중심 채용으로의 전환이 '공정 채용'의 원칙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전공이나 스펙 대신 과제 수행, 심층면접, 자기서술형 평가가 확대될수록 평가 기준의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가 관건이 된다. 채용절차법상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 요구는 여전히 금지되며,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큰 정성 평가일수록 채용공고 단계에서 평가 항목과 배점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는 길이다. '전공 무관'이 자칫 '기준 무관'으로 흘러 채용의 자의성 시비로 번지지 않도록, 기업은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정교화하고 평가 근거를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반나절 심층면접·과제형 전형과 같은 새로운 평가 방식은 지원자의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가의 타당성을 높이려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장시간 전형이 다회 지원이 어려운 취약계층 구직자나 지방 거주 지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전형 설계 단계에서부터 형평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AI 활용 역량을 평가 항목으로 명시하는 흐름은 자칫 AI 도구 접근성의 격차, '디지털 격차'가 곧바로 '취업 격차'로 이어질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정부와 대학, 직업훈련기관이 AI 리터러시 교육을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이러한 채용 패러다임 전환은 재직자와 기존 구직자에 대한 재교육·전직 지원 확대와 함께 가야 한다. 정형화된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해당 직무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국민내일배움카드,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등 기존 직업훈련 제도를 AI 시대 역량, 즉 문제해결력·소통력·협업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재설계하고, 특히 이공계 중심 산업에서 인문·사회적 소양을 함께 갖추도록 하는 융합형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가 지적했듯 "인문계와 이공계 두 분야가 함께 협업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이 되려면, 그 협업 역량은 채용 시점이 아니라 재직 기간 내내 길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4. 기업에 대한 제언, '전공 파괴'를 넘어 '역량 검증 체계'

기업 입장에서도 이번 변화는 단순히 채용 문구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서는 과제다. 효성처럼 특정 전공만을 대상으로 한 채용을 설계할 경우, 그 채용의 목적과 필요성(글로벌 사업 비중, 어학·소통 역량 수요 등)을 채용공고와 인사 규정에 합리적으로 소명해 두는 것이 향후 차별 시비를 예방하는 길이다.

 

SK하이닉스의 반나절 심층면접처럼 평가 방식 자체를 개편할 때는, 면접관 교육과 평가표 표준화를 통해 평가자 간 편차를 최소화하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전공 파괴'가 진정한 인재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그 이면에 신뢰할 수 있는 역량 검증 체계와 공정한 절차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업들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5. 맺음말,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

AI가 정형화된 업무를 대신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 고유의 공감, 판단, 책임, 소통 능력의 가치는 더 커지고 있다. 채용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공 파괴''인문 우대' 흐름은 이러한 변화의 초기 신호일 뿐이다. 이 흐름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기업의 채용 혁신과 더불어 공정 채용 원칙의 준수, 평가의 형평성 확보, 재직자·구직자를 위한 재교육 지원이라는 세 가지 축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AI 시대일수록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채용시장의 변화가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

 

빠른 실시간 뉴스, 태백시민·정선군민과 함께 만드는 언론
태백정선인터넷뉴스는 한국지역인터넷언론협회 회원사입니다.

 

ⓒ 태백정선인터넷뉴스 (tji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광고문의/취재요청 tbnews21@naver.com)

태백정선인터넷뉴스 (tbnews21@naver.com)

  • 등록된 관련기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