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염이 '재난'으로 격상된 날
지난 8월 2일 오후 1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기록적인 폭염으로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이에 맞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 사업장에 폭염·질식 위험 대응을 강화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노동부 본부와 지방 관서, 안전보건공단, 민간 재해예방기관이 참여하는 '폭염 안전 특별대책반'의 상시 가동, 중대재해 사이렌을 통한 신속한 상황 전파, 그리고 물류센터·건설현장 등 취약 사업장에 대한 집중 지도·점검이 그 골자다.
그러나 이 긴급 지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부가 위기 상황마다 반복해서 꺼내는 카드가 여전히 '지도'와 '권고'라는 두 단어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올여름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이 긴급 지시들이 매번 같은 문구로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현행 폭염 대응 체계의 법적 구조 자체에 있다.
2. '5대 기본수칙'과 '3단계 작업중지', 그 실체
노동부가 사업장에 이행을 요구하는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충분히 제공할 것.
둘째, 이동식 에어컨·산업용 선풍기·그늘막 등 냉방·통풍장치를 가동할 것.
셋째,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할 것.
넷째, 냉각조끼·휴대용 팬 등 보냉장구를 지급할 것.
다섯째, 온열질환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119에 신고할 것이다.
'폭염 단계별 작업중지 조치사항'은 올해 기상청이 최고 체감온도 38도 이상이 하루라도 예상되면 발령하는 '폭염중대경보'를 18년 만에 신설하면서 3단계로 세분화됐다.
체감온도 33도 이상(폭염주의보): 작업시간대 조정 또는 옥외작업 단축
체감온도 35도 이상(폭염경보):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시~5시 옥외작업 중지
체감온도 38도 이상(폭염중대경보): 재난·안전관리 등 긴급조치 작업을 제외한 모든 옥외작업 전면 중지이다.
여기에 더해 노동부는 밀폐공간 작업에 대해서도 긴급조치 외에는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기온이 오르면 오·폐수 처리시설, 하수관로, 정화조, 저장 용기 내부에서 이산화탄소·황화수소 등 유해가스 농도가 급격히 상승해 질식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3. 문제는 '권고'라는 두 글자다
여기서 노무사로서 짚지 않을 수 없는 핵심이 있다. 이 촘촘해 보이는 체계 가운데 실제로 '법적 의무'인 조치는 단 하나,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2024년 10월 22일 개정되어 2025년 6월 1일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에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가 보건조치 의무 대상으로 신설되고, 2025년 7월 17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0조에 구체화되면서 비로소 법률적 강제력을 갖게 됐다. 이를 위반해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사망에 이르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적용된다.
반면 정작 노동자의 생명과 가장 직결되는 35도·38도 단계의 '옥외작업 중지'는 여전히 '권고'와 '강력 권고'에 그친다.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뜻이다. 정부 스스로도 "법적 강제는 아니지만 온열질환 사망 발생 시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사실상의 압박으로 이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을 뿐이다. 체감온도 38도, 즉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서조차 사업주에게 작업을 멈출 '의무'가 아니라 '권고'만 존재한다는 것은, 산업현장의 실질적 힘의 불균형을 고려할 때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공정 지연에 대한 부담, 매출 손실 우려 앞에서 '권고'는 손쉽게 뒤로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을, 현장을 다뤄본 이라면 누구나 안다.
4. 숫자가 말해주는 위험의 크기
이러한 제도적 공백은 통계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온열질환 산업재해 승인 건수는 2020년 13건에서 2025년 77건으로 5년 새 5.9배 늘었다. 같은 기간 사망 승인 건수는 2020년 2명, 2022년 5명, 2023년 4명, 2025년 5명으로 매년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올해도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5월까지 이미 온열질환 산재 신청 18건 중 12건이 승인됐고, 그중 4명이 사망 사례였다.
더 심각한 대목은 이 재해가 누구에게 집중되는가이다. 2021~2025년 온열질환 산업재해자 228명 가운데 46.5%가 건설업 종사자였고, 71.0%는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안전관리 인력도, 냉방시설 투자 여력도 부족한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쓰러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이동식 에어컨 등 지원 예산 280억원, 물품지원 15억원을 편성한 것은 방향은 맞지만, 매년 수천 곳에 이르는 취약사업장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미봉책에 가깝다.
5. 법원은 이미 답했다
주목할 것은 사법부의 태도 변화다. 대전지방법원은 2025년 6월 13일, 2022년 7월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 그늘·휴식·음료 제공 없이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 열사병으로 사망한 하청노동자 사건에서, 원청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현장소장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온열질환 사망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첫 유죄 판결이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폭염경보라는 객관적 위험 신호, 열부하가 큰 고강도 작업, 그리고 최소한의 보호조치 부재라는 세 요소가 결합하면 폭염 사망도 '예견 가능했던, 관리 가능한 위험이 방치된 사고'로 본다는 기준을 명확히 했다. 사법부는 이미 폭염을 '천재(天災)'가 아니라 '관리 실패'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의 제도가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6.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규제 완화 논의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최근의 규제 완화 흐름이다. 국무총리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유일한 법정 의무 조항인 '33도 이상 시 2시간마다 20분 휴식 부여'에 대해서조차 "획일적 규제로 인한 부작용"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종합적 재검토를 권고했고, 노동부는 이를 반영한 재입법예고를 준비 중이다.
법제화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그것도 온열질환 사망의 상당수를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고 '기업 부담'을 이유로 후퇴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 생명 보호라는 가치가 여전히 산업 효율성 논리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7. 이제는 '권고'를 넘어설 때다
폭염은 더 이상 예외적 이상기후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기후 재난'이다. 그렇다면 대응 역시 매년 반복되는 장관의 긴급 지시와 현장 불시점검이라는 임시방편을 넘어, 제도의 뼈대를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체감온도 35도·38도 단계의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가 아닌 법적 의무로 격상해야 한다. 처벌 규정 없는 강력 권고는 결국 선의에 기댄 호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 하청 노동자가 밀집한 건설·물류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원청의 안전보건 총괄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도급 관계에서 폭염 대응 비용과 공기 연장을 둘러싼 원·하청 간 책임 소재를 법령으로 정리해야 한다.
셋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재정·물품 지원을 실질적 수준으로 확대하고, 규제개혁 논의가 노동자 생명 보호를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노사정이 함께 감시해야 한다.
넷째, 밀폐공간 질식 위험 역시 계절적 경고에 그치지 말고 상시적인 사전 위험성평가 의무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김영훈 장관의 이번 긴급 지시가 반복되는 연례 행사에 머물지 않으려면,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국회와 정부는 '권고'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입법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체감온도는 이미 38도를 넘나드는데, 법이 여전히 33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생명은 권고문 한 장으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본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
[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