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으로 시급 1만 2천원을 요구했다. 올해 확정된 최저임금 1만320원보다 16.3% 올려달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걱정하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민생 해법이 아니라 현실을 외면한 정치적 구호가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은 숫자를 높여 쓰면 정의가 실현되는 제도가 아니다. 최저임금은 선언이 아니라 비용이고, 비용은 결국 누군가의 채용 축소와 영업 포기, 노동시간 감축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고용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 경제에서 16.3% 인상은 조정이 아니라 사실상 충격요법에 해당한다.
노동계는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 못 미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논리라면 경기 둔화, 내수 부진, 폐업 증가, 인건비 부담 가중이라는 반대편 현실은 왜 의도적으로 지워 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기업의 지불 능력과 노동생산성, 업종별 수익 격차를 외면한 채 “물가가 올랐으니 임금도 크게 올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경제 분석이 아니라 선동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노동계의 이번 요구는 책임은 국가와 사용자에게 떠넘기고 정치적 명분은 자신들이 독점하겠다는 생각이다. 최저임금은 원래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 기준이지,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자산 불평등, 산업구조 왜곡을 한 번에 해결하는 만능 지팡이가 아니다. 해결 수단이 다른 문제를 억지로 최저임금에 욱여넣으면, 제도는 보호 장치가 아니라 시장 교란 장치로 변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장에서는 이미 답이 나오고 있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 압박은 신규 채용 보류, 단시간 쪼개기 고용, 무인화, 자동화, 가족노동 대체로 이어진다. 결국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은 목소리를 키우고, 정작 보호받아야 할 청년·고령자·저숙련 노동자는 채용 문턱에서 밀려난다는 사실이다. 노동계가 말하는 ‘연대’가 실제로는 노동시장 약자를 가장 먼저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위선적인 대목이다.
이번 요구가 더욱 무책임한 이유는 인상 폭의 수준 때문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1만320원으로 결정됐고, 전년 대비 인상률은 2.9%였다. 그런데 여기서 단숨에 16.3%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점진적 조정이 아니라 제도 안정성을 흔드는 급가속이다. 제도는 예측 가능해야 하지만, 이런 식의 요구는 협상용 엄포를 넘어 시장 전체에 불확실성을 주입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동계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확대 적용까지 동시에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은 전통적인 사용종속 관계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인데, 계약 구조와 보수 산정 방식이 다른 집단까지 일괄적으로 끌어들이면 법적 충돌과 집행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제도 설계의 차이를 무시한 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자”는 주장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장 퇴출과 계약 축소를 앞당길 위험이 크다.
업종별 구분 적용을 무조건 ‘차별’로 몰아붙이는 태도 역시 편협하다. 현행 법체계상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실제로 업종별 구분 적용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어 온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업종에 동일한 인상률을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생산성 격차와 지불 능력 차이를 무시한 기계적 평등주의다. 평등의 언어를 앞세우지만 결과는 더 큰 폐업과 더 적은 일자리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이야말로 가장 반서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저임금 정책의 핵심은 구호가 아니라 균형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지만, 그 방식이 고용을 해치는 수준의 급등이어서는 안 된다. 정말 취약계층을 돕고 싶다면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보다 근로장려금, 사회보험 지원, 직업훈련, 직접 소득보전 같은 정밀한 정책수단을 강화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숫자를 던져 놓고 이를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쉽지만, 그 청구서는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이번 노동계의 1만 2천원 요구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위한 책임 있는 제안이라기보다, 최저임금을 정치적 상징으로 소비하는 과장된 압박 카드에 가까운 것이다. 최저임금은 높게 부르면 이기는 경매가 아니다. 숫자의 도덕성을 외치기 전에, 그 숫자가 사라지게 만들 일자리부터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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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