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둘러싼 담론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생산성 혁신과 편의성의 극대화에 대한 기대이고, 다른 하나는 일자리 감소와 인간 소외에 대한 불안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인력 감축, AI 아바타 노동의 등장,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의 ‘AI로 대체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논의는 이 양면성이 이미 현실의 정책 과제로 진입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제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질서의 재편 문제이다.
첫째, AI는 단순히 ‘일자리를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과 구조를 재구성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과거 자동화가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AI는 판단·분석·창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직무 기반 고용 체계를 흔들고, ‘직무’가 아닌 ‘기능 단위(task)’ 중심으로 노동이 재편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결국 노동법이 전제해 온 “특정 사용자에 종속된 노동 제공”이라는 구조 자체가 도전을 받게 된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핵심 질문은 분명하다. “누가 대체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노동이 재정의되는가”이다. 단순 반복 업무뿐 아니라 중간관리, 분석, 심지어 일부 전문직 영역까지 AI와의 협업 또는 경쟁 구도로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노동정책의 초점은 일자리 ‘보호’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노동의 ‘전환 관리’로 이동해야 한다.
둘째, AI 시대의 불평등은 ‘고용 여부’보다 ‘접근과 활용 능력’에서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 고가의 AI 모델 구독료, 데이터 접근성, 활용 역량에 따라 생산성과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임금 격차보다 더 빠르고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교육 격차가 계층 이동을 좌우했다면, AI 시대에는 ‘AI 활용 역량 격차’가 새로운 사회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단순한 직업훈련을 넘어 ‘AI 리터러시’를 사회적 기본권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선택적 역량이 아니라 노동시장 참여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장년층과 저숙련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재교육 체계는 기존의 형식적 프로그램을 넘어 실질적 전환이 가능한 수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AI 도입에 따른 사용자 책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기업은 AI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고용책임은 회피하려는 유인을 갖는다. 이때 단순히 해고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기술 도입 자체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보다 현실적인 접근은 ‘AI 전환 책임’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AI 도입으로 직무가 소멸하거나 축소되는 경우 사용자에게 재배치, 재교육, 소득 보전 등의 의무를 단계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이 검토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사례처럼 AI로 기존 인력을 대체하지 않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은 하나의 실험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는 단순 보조금 정책에 그쳐서는 안 되며, 기업의 장기적 인력 운용 전략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도입의 속도’가 아니라 ‘전환의 사회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넷째, AI의 확산은 노동법의 보호 범위를 다시 정의하도록 요구한다. 플랫폼 노동에서 이미 경험했듯이, 전통적인 근로자 개념만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포섭하기 어렵다. AI와 협업하는 프리랜서, 데이터 제공자, 알고리즘 관리 노동 등은 기존 법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향후 노동법은 ‘종속성’ 중심에서 ‘경제적 의존성’ 또는 ‘위험 부담 구조’ 중심으로 보호 기준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본질적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이 강조한 ‘AI의 무장해제’는 기술을 통제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존엄이 최종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원칙의 재확인이다.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은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 방식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잊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AI를 통해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를 묻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어떤 노동이 인간다운가”, “어떤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 기술이 노동을 재편하는 시대일수록, 노동의 가치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AI 시대의 노동정책은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기술에 종속된 노동 질서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 중심의 노동 질서를 재설계할 것인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낙관도, 기술 공포도 아닌, 노동을 중심에 둔 냉정한 설계다. 그리고 그 설계의 기준은 언제나 인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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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강원도 삼척 출신
△건국대학교(행정학과)석.박사
△노동부 총무과(인사 담당)
△노동부 감사담당관실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공직 감찰)
△노동부 고용정책실 자격지원과
△노동부 기획조정실 고객만족팀
△노동부 산업안전국 안전정책과
△강릉지방노동지청 근로감독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 직업능력개발과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 근로개선지도1과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원주고용센터 소장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
△현 노무법인 최상인업 대표공인노무사
저서 : △노동법 강의 △외국인력 정책론 △노동법은 내친구 △산업안전 보건법 해설 △외국인 고용 허가제
논문 : △외국인근로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행정학석사) △저 숙련 외국 인력의 정책평가에 관한 연구(행정학박사)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보호정책에 관한 연구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