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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제사의 이해와 의미설날과 추석은 차례상, 조상에 감사 의미

기사입력 2024-09-15 09:11 수정 2024-09-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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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祭祀)란 신이나 신령, 죽은 사람의 넋 등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의식을 말한다. 따라서 고대 종교의 신전 제의, 가톨릭의 미사 등도 일컫는 폭넓은 개념이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주로 조상제사의 의미로 쓰인다. 이 문서에서는 조상제사를 설명한다.
 
전세계 어디에나 제사에 해당하는 조상 추모 의식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제사라 함은 유교적 제례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불교식도 포함돼 불교식 제례는 명복을 비는 재(齋)로 지낸다.
 
유교식으로는 기본적으로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이게 넘어가면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원칙적으로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 차례상 그림.(자료출처=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이후 5대조 이상의 조상은 개개인의 기일이 아닌 음력 10월에 동시에 기리는 묘사(墓祀)를 지내거나, 큰 공을 세운 조상의 신위는 시대가 지나도 옮겨 그만두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不遷位) 같은 예외가 추가되었다.
 
보통 서양권에서 이 문화를 소개할 때 제사를 보통 Korean Ancestral Rites(한국의 조상에 대한 의례)라고 하거나 아예 Jesa로 음역한다.
 
유래는 신이나 신령, 조상 등에게 봉헌하는 의식은 유교뿐 아니라 수많은 종교에서 관찰되며 중요시된다. 지중해 문화권의 고대 종교들에서는 훌륭한 제사는 '경건함'의 주요한 예시였고, 동아시아에서는 갑골문에서 수많은 제의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종교가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종교가 공적 영역으로 인식되던 고대에는 개인과 공동체의 신심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제사가 자연스럽게 중시되었다.



▲ 기제사 상차림.(독자 이미지)
 
한국의 전통적인 제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 바탕에 한반도의 지역적 특성이 섞여서 형성된 것이다. 고대 중국 상나라(은나라)의 왕 조갑이 주변 토착신을 배제하고 조갑의 직계 조상만 섬기는 조상신 풍습을 만들게 되는데, 기록을 보면 상족의 조상은 직계인 근조선공과 직계가 아닌 원조선공으로 나뉘는데, 상나라에서 제사는 직계 선조인 근조선공에게만 지냈다. 이러한 조상을 섬기는 문화에서부터 제사가 시작된 것. 이때 제사의 제물 중에는 상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족속의 사람도 있다.
 
결국 상나라는 주나라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주나라는 위에서 조갑이 퍼뜨린 풍습을 따라 상나라의 제사방식을 이어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상나라의 전 지도층을 제후로 임명해 상나라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 이어가도록 했다. 이것도 다른 가문의 제사를 끊기게 하면 그 사람에게 제사가 끊어진 조상 귀신들이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떠돌이 생활을 하며 왕들을 가르치던 공자가 주나라 제사 문화를 재정비했다. 일반명사로서 제사의 뜻은 이렇지만, 흔히 한국에서 '제사'라고 하면 '조상 제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수단으로서 행해진 제사는 중, 근세에 이르러 유교와 결합하여 조상숭배의 제도로 고착되었다. 또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면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교가 분리된 이후에도 황제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권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 진폐재해순직자 위령제 모습.
 
다만 제후국을 자처한 조선의 왕은 하늘에 대해 제사를 지낼 수 없었고, 왕조의 조상신(종묘)과 땅의 신(사직)에는 제사를 지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또한 가정에서는 효의 의미를 가져 가문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종교적 면은 사후세계의 인정을 통한 유교 특유의 간접적 영생법의 의미를 가졌다.
 
고려, 조선 전기까지는 아들딸 상관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받고 제사의 주체에서도 남녀차별이 없었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출가외인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남녀 구별 없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셨으며, 기혼 남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집간 누나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아버지의 재산 2/3을 받고, 나머지를 다른 아들들이 나누고, 딸은 받지 못하는 인습(因習)이 집성촌일 경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도 부모는 모든 자녀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일이 현재 보편화되고 있다. 위의 자료는 나무위키와 다음백과 등을 참조했다.
 
차례 및 제사와 관련해 보편적인 질문과 답변을 찾아보았다. 먼저
 
제사는 조상에게 높은 신분과 계급, 토지와 재물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그 은덕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그 땅에서 나는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서 차리고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표시로 보편화 된 것이 제사이며 최근에는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고 조상이 있는 것을 방문, 성묘로 대체한다든가, 카톨릭의 경우 설날과 추석은 합동미사로 지내기도 한다.
 
제사음식도 남자들이 해서 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이는 위의 백과사전에도 나와 있듯 우리민족은 남자가 중국 한족처럼 요리하지 않기에 돈을 주어 음식할 일손을 사서 상을 차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빈한한 살림이나 몰락한 양반집안에서는 그럴수 없으니 집안 녀자들이 음식을 장만했다.
 
남자 조상들만 제사하고 여자 조상들은 제사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 남자 조상에게 계급, 신분, 토지, 재물을 물려받기 때문이고 처가나 외가에서 계급, 신분, 토지, 재물을 물려받은 경우 처가나 외가 제사도 지내고 있다.
 
명절에는 남자집에서 차례 지내면 처가와 외가에도 인사를 가고 있으며 처가와 외가 선영에 성묘도 가는 것이다. 개신교도 역시 제사는 지내지 않지만 예를 갖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묘소에 가거나 가족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고 음식을 같이 먹기도 한다.
 
명절 차례상은 장보기부터 음식준비까지 남녀가 따로 없이 함께 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많은 가정들이 부부가 함께 음식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가고 있다. 일부는 간소화 하고 성묘로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제사나 차례는 조상의 은덕에 대해 인사를 드리며 혈족간에 우의를 더욱 강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위의 내용들은 모두 사전과 사료 등을 참조로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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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상 기자 (tbnews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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